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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웃는 대한민국 청소년이 되고 싶은 꿈
성지민(18세)
2014년 3월 12일, 고2 첫 모의고사를 쳤다. 모의고사 날, 수학시험을 치고 난 뒤 다른 반의 친구가 찾아왔다. 원래 공부를 잘하는 아이인데, 수학을 망쳤다며 우리 반 문 앞에서부터 투덜대며 나를 찾아온 것이다. 다른 친구의 시험지를 보며 자기가 틀린 문제 7개까지 세고 다시 자기 반으로 그 친구는 돌아갔다. 그런데 그 다음 날 반 게시판에 각반의 모의고사 총점 1등과 그 점수가 적혀진 표가 붙었는데, 수학을 망쳤다던 그 아이가 당당히 자기 반 1등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다른 과목을 잘 쳤는가보다 생각하고 있던 차에 다른 아이들에게서 그 아이가 수학을 2개밖에 안 틀렸다는 얘길 들었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화가 났다. 그 아이에게 왜 그런 가식을 부리냐고 묻고 싶었지만, 괜히 시험점수가 잘 나오지 않아 열등감에 화내는 것 같아 보일까 참고 있는 나에게 더 화가 났다.
나도 내가 왜 화가 나는지를 몰랐다. 그 아이가 나보다 총점이 30점 정도 높아서? 내가 수학을 너무 못 쳐서? 그것도 아님 열등감이 느껴져서?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내가 비단 그 아이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아이가 입시제도에 완벽하게 적응한 아이 같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약육강식의 세계에 살아남으려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어!”라고 그 친구가 나에게 말하는 듯하였다. 그 아이뿐만 아니라 시험만 치면 서로의 눈치를 보고 거짓말하고, 서로 믿지 못하면서도 상처받는 우리의 모습은 또 어떤가.
이렇게 거짓투성이에 서로를 속이기 바쁜 우리 중 누군가가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을 들어가고, 흔히 말하는 좋은 직업을 가져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겁이 났다. 우리가 울거나 웃거나 화내는 모든 사항은 결국 개인의 성취감이거나 열등감으로 끝날 뿐이다. 이렇게는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없는 것이 뻔한데, 지금의 우리 모습 그대로라면 지금 우리가 비판하는 발전이 없는 어른이나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지 못 하는 정치인이 될 것이 분명하다. 명문 대학들도 미래사회와 창의적인 인재, 글로벌한 인재를 자신들의 인재상이라 운운하며, 결국에는 내신점수가 좋으며 남들보다 뛰어난 스펙을 가지고 있는 아이를 뽑는 사실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나는 시험점수와 상관없이 시험이 끝난 후련함과 성취감에 다들 웃을 수 있고, 열심히 공부해 시험을 잘 친 친구에겐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분위기를 원한다. 그리고 다른 친구가 나보다 시험을 잘 쳤다고 해서 더 이상 위축되고 싶지 않다. 시험을 잘 친 아이를 부러워하는 것이 아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더 많이 알려고 노력하는 아이를 멋지게 생각할 수 있는 친구들과 분위기를 꿈꾼다. 지금 나와 같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이 공부의 목적을 ‘돈’으로 두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가치 있게 꾸려나가는 것으로 뒀으면 좋겠다. 우리가 소치 올림픽을 보며 김연아의 아름다운 연기와 쇼트트랙의 역전승에 기뻐했듯이, 크림반도에서 가난하고 힘이 없어 나라를 잃을 위기에 처한 사람을 보며 가슴 아파할 수 있는 학생이었음 좋겠다.
매일 “우리나라는 입시제도가 정말 문제인 것 같아”라 푸념하지만 막상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며 우리는 체념하곤 한다. 입시제도를 포함하여 사회에서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일에 대해 불이 확 붙듯 얘기가 타오르지만, 결국엔 그 얘기가 “결국 대학 잘 가야지?”라며 끝나는 것이 찝찝하기도 하고 화가 난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세대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나 “내일부터 새로운 세대가 될 것이야!”라며 미래로 그 일을 미루는 것으로 시작되진 않을 것 같다. 식상한 불평불만과 그에 따른 현실 체념이 아닌,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사실 사회 분위기의 변화나 새로운 세대의 탄생이라는 말들은 너무 이상적으로 보여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아닌 ‘내가 사는 세상에 더 관심을 가지는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아침 뉴스에서 본 이야기를 친구들과의 대화 속으로 쑥 밀어 넣는 것에서부터 학교, 더 나아가 사회의 분위기는 변화하리라 믿는다.
성적으로 웃고 우는 우리가 아닌, 공정하게 진행된 국제행사의 성공이나 분쟁지역에 찾아온 평화에 웃을 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 사람 한 명 두 명이 모여 학교가 되고, 도시가 되고, 국가가 되듯이 우리는 우리의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 새로운 세대는 천천히, 하지만 곧 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출처 : 청소년이 직접 만드는 인문교양지 인디고잉 4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