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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민으로서 윤리적 책임 상세보기

작성자: 사무국 조회: 290718

세계시민으로서 윤리적 책임

 

김상원(23세)

 

4년 전, 대학 전공을 결정해야 하던 때 나는 큰 망설임 없이 문학을 전공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때도 물론 인문학이 먹고 사는 문제에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전망이 사회에 가득했지만, 문학이 인간에게 생존 이상의 의미를 준다고 믿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다. 나의 생각과 시선이 문학을 통해 바뀌었던 경험이 있었고, 거기에서 비롯한 확신이 있었다. 내가 보고 아는 세상이 전부였던 시절, 부모님과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도 없었던 타인의 처절한 얼굴, 치열한 고통, 처연한 생애를 도서관에서 마주했던 것이다. 그때 완전히 타인의 심정과 상황을 이해할 수는 없었겠지만, 점심시간이 끝나도록 나조차 알지 못할 눈물을 흘리며 세상에 새롭게 태어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이후로 샴푸를 쓸 때도, 지하철에서 노숙인을 마주칠 때도,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를 볼 때도 나는 이전과 같을 수 없었다. 전혀 다른 판단과 선택을 하지 않고서는 부끄럽고 불편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라면서 내가 아는 세계가 조금 더 넓어지고, 정보가 많아질수록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불편함이 몰려왔다. 새로운 건물들이 동네 구석까지 세워지고 사람들의 옷차림도 점점 좋아지는 것 같은데 슬픔의 크기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좁은 울타리에 갇혀 병드는 동물들, 흐르지 못하는 강, 터전을 빼앗기고 죽음으로 몰리는 사람들, 가라앉는 배를 바라만 보아야 하는 무능, 끔찍한 재해가 몰려올 줄 알면서도 아무런 대비를 할 수 없는 가난…. 세상은 계속해서 약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며 작동하고 그것이 보편적인 대다수의 문제로 대두될 때까지 철저히 고립되어버리는 구조 속에 있었다.

지난 4월 25일 일어난 네팔의 지진은 그렇게 묵살되었던 피해가 어떻게 다시 약자들에게 되풀이되는지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지진의 가능성과 진도까지도 예측할 수 있었던 현대의 진보한 과학과 기술력은 세계의 무관심과 무능력 앞에서 인간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했다. 재앙에 대비할 수 없었던 네팔의 가난과 정치적 불안에 대해 동일한 시대에 살아가고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세계는 침묵하고 아무도 나서서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메르스라는 똑같은 모순이 일어나고 있다. 국가는 무능한 네팔 정부가 그러했듯, 국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확고한 대처도 안심시킬 수 있는 정확한 정보도 제공하지 못하고 무책임의 늪에 빠져버렸다. 면역력이 약한 노인이나 병원에 입원해 있던 환자들을 통해 빠르게 감염이 확산되고 희생자의 수가 늘어나는 가운데 ‘관광객이 없어진다’거나 ‘튼튼한 사람에겐 독감 수준’이라는 말로 또 한 번 우리 사회에서 무엇을 생명과 안전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지, 약자가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지를 증명했다.

일본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은 국내외적으로 갈등과 간극이 심화되는 상태로는 세계가 더 유지될 수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자본주의는 스스로 증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약자에 대한 수탈과 착취로 이뤄져 온 것이며, 자본이 잉여가치를 생산할 수 없게 되면 3차 세계 대전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끔찍한 일이지만 요즘의 국제적인 관계나 정치적 갈등, 자본의 한계를 비추어 보았을 때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나아가 고진은 세계대전 이후에는 UN보다 더 강력한 세계정부를 통해 상호보완적이고 공평한 분배를 기본으로 하는 한층 윤리적인 세계공화국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세계대전이 벌어지는 것을 기다릴 수는 없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평화롭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지 못하면 전쟁으로 치달을지 모르는 극단적인 위험에 처해있으며, 폭주하는 욕망과 냉소를 뚫고 전쟁에 앞서 세계공화국을 꿈꾸고 실현해야만 한다.

물론 정치의 영역에 있어서, 우리의 영향력은 너무나 작고 이러한 생각은 허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따라서 오히려 시작은 공감을 통한 세계적인 책임의 연대, 기본적인 인간성의 회복에서 비롯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성숙한 시민의식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 중에는 “만약 우리나라가 아닌 곳에서 아이가 굶고 있다면, 그 아이를 위해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있는가?”라는 항목이 있다고 한다. 나의 가족이나 나라를 초월해 전 세계적인 공동체를 상상하고 이에 응답해 공적으로 책임을 질 수 있느냐는 의도가 담긴 질문이다. 이 세계의 약자가 굶주리는 것이 나의 부끄러움이 될 수 있는가, 무책임한 세계와 국가들 사이에서 이런 질문에 기꺼이 긍정할 수 있는 개인들을 길러내는 것이 지구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핵심이다.

그리고 그러한 역할을 해내는 것이 나에게는 문학이다. 생텍쥐페리는 소설 『야간 비행』에서 젊은이의 행복의 값어치와 바꿀 만한 지속적인 무언가, 사라지지 않을 인간의 가치에 대해 말한다. 오늘날 희미해진 이 용기와 가능성은 인류의 삶이 내일은 더 나아갈 것이라는 희망이며 곧 인간 그 자체를 가리킨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지식인의 표상』에서 “영원한 각성의 상태, 절반의 진실이나 널리 퍼진 생각들을 끊임없이 경계하는” 것이 지식인의 소명이며 “지식인은 제대로 대변되지 못하고 잊혀지거나 무시되는 약자들의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권력을 가진 이들의 편에 설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소명은 문학과 정치, 외교를 비롯한 모든 인간 생활에서 같은 무게를 가진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대의 책임감을 갖고 살아가는 것,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성실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내는 것, 작가로서, 정치인으로서, 세계시민으로서 우리가 윤리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일들과 취해야 마땅한 실천들을 해내는 것. 그것이 이 세계 도처에 위치한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고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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