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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시작되는 지점
박경민(18세)
나는 인디고서원에서 인문학 공부를 시작한 후 스스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보지 못했던 세상을 만나고 난 후의 내 심장은, 어쩌면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는 저 이면의 것들에 뛰었다. 장시간의 고된 노동을 하고도 하루에 1000원도 못 버는 아이들, 동물들의 배설물이 섞여있는 물을 마시는 사람들, 피부가 검다고 차별 받는 흑인들, 경제성장의 명목 하에 짓밟히는 자연, 그리고 핏덩이 같은 자식을 물 속에 가라앉힌 채 아무런 원인도 밝히지 못하는 부모들 등등. 내 심장이 분노하기에 충분했던 그 만남은 나를 바꾸기에 충분했고, 그래서 내 삶도 ‘나’가 아닌 그 이면의 것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 나갔다.
하지만 나 혼자 달라진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난 주변의 친구들과 최대한 내가 인디고서원에서 배운 가치들을 함께 공유하기 위해 인문학 잡지 ‘인디고잉’의 기자활동을 하며 글도 쓰고, sns에 생각을 올리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우와 멋지다”라든가, “어렵다…”라든가 이런 반응만 하지 내 글이 무엇을 말하는지, 내가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 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공부에 지친 청소년이라 주위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이런 얘기들이 자신과 관련 없는 시시콜콜한 시사얘기로밖에 들리지 않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친구들도 내가 만났던 것들을 한 번 본다면 나처럼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분명히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런 생각을 이어오던 중,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인디고 유스 북페어’가 다가왔다. 나는 여러 좋은 어른들과 전국의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는 이 기회를 많은 친구들이 참여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북페어 행사를 홍보했다. 학교에 포스터도 붙이고, 페이스북에도 올리고, 약간 치사한 방법이었지만 일단 오게 하자는 심산으로 자율동아리 친구들도 오면 생활기록부에 글 올릴 수 있다는 말로 참가 유도를 했다. 기대하던 북페어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고, 동아리 친구들도 많이 왔다. 3일간 진행된 북페어는 성공적이었다. 새로운 세대는 곧 탄생할 것이라는 희망과 구성원 모두가 행복할 때 공동체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깨달음을 가질 수 있었던 좋은 말씀도 듣고, 전국에서 온 청소년들과 우리 사회에 대해 열띤 토론도 할 수 있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행사인 만큼 내 친구들도 내가 처음 인디고를 만났을 때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북페어가 끝나고 참여했던 친구들에게 솔직히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고 물어보았다. “인디고 유스 북페어 어땠어?”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겠고 솔직히 지루했어.”
순간 정말 무기력해짐을 느꼈다. 물론 생활기록부에 올릴 수 있다는 말에 온 것이긴 하지만, 나는 일단 와서 강연을 들으면 없던 관심도 생길 줄 알았다. 열정을 다해 들을 것이라 확신했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런 걸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으니깐. 그 누구와도 우리가 청소년으로서 가져야 할 가치와 태도에 대해 열띠게 대화해본 적이 없으니깐. 그래서 이 북페어는 정말 신선한 경험일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친구들의 반응은 몇 명 빼곤 다 비슷했다. 이해도 못하겠고, 재미없었다 등등.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관심의 문제일까? 세월호도, 팔레스타인 분쟁도, 밀양 송전탑사건도, 원자력 발전소도, 모두 그저 관심의 문제라서 이 지경까지 온 것일까? 그래서 우리는 아는 것만, 보이는 것만, 게 중에도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일까.
몇 년 후면 어른이 되어 이 사회를 이끌어갈 우리 청소년들이,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무엇이 중요하게 여겨져야 하는지에 대해 사유하지 않는다면 결국엔 우리 세대도 세월호 세대가 될 것이다. 개인의 사익만을 챙기며 악순환의 고리를 돌다 돌다 침몰한 세월호 세대 말이다. 이 틀어진 판을 다시 짜려면, 우리는 새로운 세대가 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가 될 우리는 각자의 삶 이외에는 관심을 둘 여유가 없어 보였다. 내 공부, 내 학교생활, 내 대인관계. 모든 것이 개인의 영역으로 파편화되고, 넓은 세상을 볼 여지가 없는 세대가 바로 우리인 것 같았다. 과연 이런 모습으로 우리 세대는, 우리 사회는 괜찮을까?
내가 인디고서원을 만나기 전엔 어떠했는지 떠올려보았다. 딱히 사회의 불공평에 대한 분노도,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포부도, 심지어는 누군가가 세상에 짓눌려 죽어간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던 그때. 나는 무엇을 향해 살았나? 난 누구와 싸운 적 없이 대인관계도 괜찮았고, 친구들이 힘들 땐 도와주기도 하고, 좋아하는 태권도도 열심히 하고, 학교생활도 즐겁게 하던 그런 학생이었다. 세상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었지만 나름대로 학생의 소임인 공부를 하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생각했고, 내 삶에 충실했다. 내 또래 대부분의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학생은 공부를 하는 사람이고, 그렇다면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사회에 기여하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어쩌면 무언가 정말 거창한 일을 해서 사회를 변혁시켜야겠다는 그런 너무 큰 꿈만 꾸고 있었지 않나 싶다. 친구들은 친구들 나름대로 열심히 살며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런 친구들이 사회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무기력해질 필요가 있을까? 물론 우리가 사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어떤 고통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인다면 더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겠지만, 그들도 언젠가는 한 계기를 가지고 사회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한 가지 더 간과한 것은, 북페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청소년들의 뜨거운 마음이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을 바꾸어 왔던 것은, 정의로움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미래의 희망에 대한 용기를 가짐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던가? 나와 북페어에 참여했던 그 청소년들 스스로가 우리의 신념에 따라 삶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의 삶이 사람들을, 그리고 세상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인디고잉을 통해 인디고의 아이들이 한 목소리를 내어 끊임없이 이 시대를 고민한다면, 분명히 관심이 없는 이들,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 낙담하는 이들, 이 처절한 사회를 이용하는 이들까지, 적지 않은 사람의 마음 속 한 켠에 무엇인가가 던져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
[출처] [44호] 청소년 칼럼 : 희망이 시작되는 지점|작성자 인디고잉